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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희생양
작성자 최미희 등록일 2019-11-02 12:48:16 조회수 15

Rene Girard (르네 지라르)는 문학 평론가로 시작하여 인류 문화 학자로 활동하고 성서 연구를 하다가 무신론자였던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이유는 소설, 신화에 나오는 비극을 탐구하면서 성경 또한 신화라 생각하여 탐구 하다가 복음서에서 많은 진리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르네 지라르가 연구한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항상 누군가를 희생양 삼았던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하는데 한 집단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한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배출되며 갈등은 해소 된다는 것이다.

 

이 희생양에 대해 말해보자면 이 희생양은 완전 무고하며 비난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집단적으로 1차 왜곡이 일어나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그릇되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 희생양이 된 사람은 무조건 매도를 당하게 되어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생각하기를 희생 당하는 그 사람은 사회적인 약자고 가난하고 불쌍하고 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이 희생양 이론에 타켓이 되는 희생양은 그 누구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라르가 연구한 내용 중에 있는 내용인데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오이디푸스는 테베 도시국가의 아들이었으나 이 아들이 나중에 커서 자기 엄마와 결혼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된 왕은 그 아들을 멀리 나가서 죽이라고 부하에게 시킨다. 그런데 이 부하가 그 아이를 죽이지 못하였고 그 아이는 이웃나라로 입양되어 왕자가 된다.

그 아이가 커서 청년이 되었을 때 마차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다른 마차를 만났는데 시비가 붙게 된다. 그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자기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아버지는 어렸을 때 그 아이를 죽이라 했기 때문에 그의 인생에서 한 번도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그 아이 또한 그 때 만난 그 사람이 자신의 친 아버지일 것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오이디푸스는 그 죽인 사람의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결국 처음에 예언했던 대로 된 것인데 그것을 본 제우스의 진노를 사서 테베에 전염병을 내리게 된다

사람들은 그 전염병의 원인에 대해서 찾다보니 그제서야 옛날에 쫓겨났던 그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랑 결혼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런 전염병이 돌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이디푸스를 쫓아내게 된다. 그를 쫓아내니 전염병은 멈추었다. 이 이야기는 미화되고 허구인 신화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이 오이디푸스가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로 인해 죽임을 당할 뻔 하였는데 공교롭게 살아남아 다른 나라 왕자가 되었고 길을 가다 시비가 걸려서 그 상대를 죽였는데 그 사람이 아버지인 것이 이 오이디푸스의 잘못인가? 그리고 관례적으로 그 죽인 사람의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하필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이 오이디푸스는 몰랐던 것이다. 그냥 그 전염병에 대해 화풀이 할 대상이 되어버린 그 스스로에게는 잘 못이 없었던 오이디푸스에게 모든 감정이 쏟아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라르는 구약성경를 연구했을 때 이런 신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화는 어떤 폭력이든지 마지막은 은폐한다. 오이디푸스의 무고를 밝히지 않고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해 그를 쫓아낼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입증만 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요셉이야기를 예를 들면 형들의 폭력으로 무고한 요셉을 팔아넘긴다. 하나님은 항상 요셉의 편이였고 마지막에 요셉은 그 형들을 용서하며 여기로 나를 보내신 이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을 한다. 여기서 그 형들의 폭력에 대해 미화되지는 않는다.

 

욥기에 내용을 보면 한 사람을 두고 여러 명이 공격을 한다. 그러나 그 논리에 굴복하지 않는 욥이었고 하나님은 다수 편에 서지 않고 무고한 한 사람의 손을 들어준다.

이 폭력의 정체가 신약의 복음서에서 완전히 드러나게 되는데 만인이 얼마나 무지했고 그 무지로 무고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이 희생양 매커니즘의 폭력성은 모두가 예외 없이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 그 폭력의 저지하지 못했지만 동의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있었다. 바로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로 인해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신화에서 나온 이야기와 달리 희생양이 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인 자들을 향해 저들은 죄를 알지 못한다. 즉 전혀 인지하지 못함을 말씀하시고 용서를 구한다.

 

인류는 신화는 한 희생양을 잡아서 분풀이를 하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을 택하고 항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일을 행해 왔지만 

지라르가 말하는 이 성경의 신비는 이 인류가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 희생양 매커니즘도 통하지 않는 신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십자가 사건은 폭력의 매커니즘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신비이다.

예수님은 그저 단순히 폭력에 희생된 인류의 갈등을 분풀이 삼을 대상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신화는 인간의 정당성을 폭력성을 계속 입증하려 하지만 성경은 그들이 내세우는 폭력은 인지하지 못하고있고 정당화 할 수 없다

예수님의 죽음은 저들의 정당함으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분명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희생의 차원을 넘는 생명의 일이다.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사랑을 가진 신은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뿐이시다. 세상 어느 것도 비교할 수 없는 그 큰 사랑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희생양의 타켓이 되더라도 우리를 능히 구하고 건질 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Rene Girard에 관하여 기독교 변증에 공헌한 바가 크지만 신학적으로 전부다 동의 할 수 없는 내용도 많이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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